제목 [Cover Story] 힐링 예술가, 오리지널 드로잉 쇼 김진규 감독 통권volume.36
날짜 2014-12-26 16:15조회2106
COVER STORY
 
힐링 예술가, 오리지널 드로잉 쇼
김진규 감독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다. 아니, 사실은 아무도 최고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최고의 정의가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게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최고를 꿈꿔온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진짜 최고다. 드로잉 쇼라는 분야에서 말이다. 사실 그는 오히려 최고보다는 폐인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젠 명실상부 최고다. 세계 최초 드로잉쇼 창시자 ‘김진규 감독’, 그가 들려주는 인생역전 스토리를 <메모리즈>가 함께했다.
 
글. 노서림 
사진. 김도형(목화스튜디오)
 
 
 
‘와우~’
<메모리즈>가 김진규 감독의 첫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해보자면 저 감탄사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외모는 무언가 독특하고 특이한 아우라를 풍기지만 대화를 나누어 보면 우리 옆집에 사는, 런닝만 입고 쓰레기 버리러 나오시는 푸근한 삼촌 같았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메모리즈>는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아마 시간이 더 있었다면 하루 종일 나눠도 모자랄 것 같았다.
 
 
 
뒤집어지지 않는 세상을 향해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냥 타고 난 것 같아요.”
뻔뻔하다. 하지만 거부감 없이 훅 내뱉는 그의 말이 어쩐지 정겹다. 아마 그의 솔직담백한 말솜씨 덕분인 듯하다. “부모님께서도 어릴 때부터 그냥 그림 밖에 몰랐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예술대학을 가고 대학원도 진학했어요. 여기까진 그냥 평탄한 미술학도였죠(웃음).” 그는 누구나 흔히 말하는 엘리트였다. 미술로는 알아주는 학교를 졸업했고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수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부적이라고 자부해오던 그림이 재미가 없어졌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미대교수 직함도 시시해졌다.
“글쎄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중요한 건 그렇게 재밌었던 그림이 전혀 즐겁지가 않다는 거예요. 소묘도 몇 년 하면 누구나 웬만큼 다 하는 건데 계속 그것만 그리고 있자니 답답하고, 학교라는 곳에만 있는 것도 그렇고…. 예술이라면 창조적이고 혁신적이어야 하는데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생활이니 지루할 수밖에요.”
그리고 그 길로 교수를 내려놓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얼마 만큼인지 감히 상상조차 못한 채…
 
 
욕심, 내가 죽어있던 날들
예술가답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였나 보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어느 날, 학생 중 한 명이 대뜸 말했다. ‘저는 김진규 교수님처럼 되는 게 꿈 이예요.’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엉망으로 살고 있는 것 같고, 전혀 행복하지도 않은데, 나처럼 되고 싶다니…. 나…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그 길로 바로 작업실에 갔어요. 그리고 진짜 미친 듯이 춤추면서 그림을 그렸어요(웃음). 친구가 그 모습을 보더니 저한테 ‘쇼하고 있네~’라고 하더라고요. 그 소리를 듣고 쇼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드로잉 쇼가 탄생된 거예요(웃음).”
하지만 드로잉 쇼가 자리 잡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교수 재직 중 모아두었던 재정을 다 투자했지만 늘 부족했다. “하루에 200~300만원을 들여야 할 때도 있었어요. 종이도 효과가 잘 나오기 위해 좋은 것을 써야 하거든요. 제일 싼 게 그나마 종이였는데 가격이 어마어마했죠. 거기다가 쇼를 위한 공연장도 빌려야 했고요, 연구진들에게 봉급도 줘야 했으니까요.” 어디 그 뿐이었겠는가. 홍보며, 끊임없이 연구하기 위한 미술 재료들… 예상대로 역시 재정은 바닥을 쳤다. 거기다 긴축상황을 타파하고자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울증과 공황 장애, 공황 발작도 심하게 앓게 되었다. 숨이 조여 올 때마다 벽에서 검은 손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는 헛것까지 보였다. 이대로 살다가는 진짜 괴로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진짜 자살하려고 했어요. 매일같이 숨통이 조이는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어요. 다 잃었었어요. 돈은 물론이고, 가족도 잃었었어요. 가난한 사람이랑은 살아도 미친 사람이랑 어떻게 살겠어요? 하루하루가 매일 힘들고 두려웠어요. 가만히 있다가도 하루에 수십 번씩 숨이 조여 왔으니까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방구석에만 박혀있게 되었고 결국 심장마비로 숨이 끊어졌다.
 
 
 
두 번째 사는 삶
“하하(웃음), 지금은 정말 멀쩡해요. 공황 장애나 발작이나 우울증 그런 게 언제 왔었나 싶을 정도로요. 모든 게 감사하죠.”
숨이 끊어진 몇 분을 경험하고 그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드로잉 쇼를 놓친 않았다. 우울함과 수지타산에 전전긍긍했던, 걱정 가득한 드로잉 쇼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얻은 기쁨과 하루가 얼마나 감사로 가득한 지를 알리기 위한 쇼로 탈바꿈하였다. 드로잉 쇼는 더 이상 예전의 드로잉 쇼가 아니었다.
새로 태어난 드로잉 쇼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TV 출연은 물론이고, 국가 행사마다 초청되었고, 전 세계에서도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가까운 일본에서 공연을 했을 때였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호응해준 일본 관객들 덕분에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어요. 근데 그 후 일본 모 대기업의 회장님께서 진짜 영화에서 볼 법하게, 큰 가방 속 돈다발을 책상에 부어주면서 일본에 있어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일본 사람들에게 제 공연이 힐링이 될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죠. 진짜 많이 고민했어요. 여러모로 일본에서 거처하는 것이 유리했지만 제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인거 같더라고요(웃음).”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가족이었다. “정말 너무 바빠요. 국내외 스케줄이 진짜 매일같이 차있어요. 아이들에게 못 놀아줘서 미안하고, 바쁜 아빠를 이해해줘서 고마울 따름이죠(웃음).”
 
 
소위 잘 나갈수록 짜가가 판친다고, 드로잉 쇼도 당연했다. 그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카피하여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의도치 않게 법정싸움까지 갔고 이겼지만 이름만 교묘하게 바꿔서 아직도 제 것처럼 공연하고 있다고. 그래도 법원은 두 번 다시 못 갈 곳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그는 말했다. “세계최초로 드로잉 쇼를 만들었고, 신선한 만큼 전 세계에서 많이들 따라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오리지널은 알아봐주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걱정이 안되요. 어차피 덤으로 사는 목숨인걸요(웃음).”
항상 감사할일이 넘치고 기분이 좋다는 김진규 감독.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중증으로 앓고 있던 때를 벗어난 것만도 감사한데, 살아있는 지금 이 시간, 이 순간까지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멀쩡하게 눈·코·입 다 붙어있는 얼굴과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도 감사하다고 연거푸 말하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메모리즈>는 그를 꼭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아직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쌓였기 때문이다. 그의 두 번째 삶의 진심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과 힐링의 메시지가 되길 소망하고 소망한다. 김진규 감독, 그는 진정 드로잉 쇼의 오리지널이었다.
 
 
* 드로잉 쇼(Drawing Show)란?
미술과 무대의 환상적인 만남, 세계 최초의 미술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 공연으로서 그림의 완성되는 모든 과정이 관객 앞에서 순식간에 그려지며 상상 못 할 미술의 특수효과를 통해 온가족에게 웃음과 감동의 잔상을 선물하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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